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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2424

이사 48시간 전에 벌어진 일들

by 아님말지머 2021. 11. 6.

시작은 아이가 코막힘을 호소하는 것으로. 만약 이사 당일까지 감기가 계속되서 유치원을 못간다=헬. 그래서 증상은 미약했지만 일요일에 여는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2시가 좀 넘는 시간에 도착했더니 병원 문 밖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게 아닌가? 가끔 일요일에 가도 10~20분 정도만 기다리면 진료를 볼 수 있었는데 그날은 1시간은 대기를 해야한다고 했다. 요새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파라바이러스에 예방접종하는 사람들까지 몰려서 인산인해를 이룬 것 같았다. 어찌어찌 진료를 보고 이사갈 집으로 건너가서 자잘한 물건들을 갖다두고 오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진짜 시작은 그 다음날부터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아이 이불과 매트에 묻은 핏물이 나를 반겼다. 원래 이사전날 아침에 쌓인 빨래를 처리하고 저녁에 거둬서 정리하는 게 목표였는데 코피를 흘려버려서 이불 먼저 빨아야했다. 건조기도 없기 때문에 햇볕의 힘을 빌려 이불을 말렸다. 이사 간다고 불과 며칠 전에 빨아서 뽀송뽀송 하게 말려둔 이불들이었다ㅠㅠ.

 

이건 그냥 애교였고 한창 이사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내 반지 어디갔지?' 하고 혼잣말을 하길래, '내가 반지 케이스 버렸는데'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 왈, '거기에 내 반지 있을텐데?' '응? 빈케이스 아니었어?' 라고 내가 입을 떼자마자 갑자기 머릿속에 3D영상으로 예물반지 형상이 떠올랐다. 아무생각 없이 케이스를 버렸을 때는 빈 케이스라고 생각하면서 버렸는데 몇 주 전 케이스를 열면서 반지가 있는 것을 확인했던 게 기억난 것이다! 당연히 남편은 어떻게 케이스를 확인도 안하고 버릴 수 있냐고 펄펄 뛰었고, 나는 예전에 내 빈 반지 케이스를 주루룩 그냥 두었었던 기억+남편 반지를 따로 보관했던 기억이 뒤섞여 그냥 빈 케이스려니 하고 슥 버렸다고 얘기하려했지만 화만 돋구는 것 같아서 찌그려져 있었다. 둘이 합심해서 이사준비를 해도 부족할 판에 내 과오로 집안 분위기를 망쳐버린 게 어이없기도 하고, 중요한 일 앞두고 이런 재수없는 일이 벌어진게 황당했다.

 

잔금일에 제출할 서류를 떼러 행정복지센터로 향하는 길에 아파트 쓰레기장에 우리가 어제 한번에 버린 쓰레기 봉투가 보였다. 내가 화장대에 있던 케이스를 버린 지 며칠 안된 것 같아서 혹시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 이사갈 집에 가려던 계획을 미루고 다시 지금 집으로 돌아가 쓰레기봉투를 뒤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우리 종량제봉투에 음식물 쓰레기봉지를 넣어놔서 지독한 냄새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75리터짜리 2개, 20리터짜리 2개를 모두 살폈지만 없었다. 허망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케이스를 버린 봉투를 내려놓은 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까 뒤졌던 곳은 지금 살고 있는 동이고, 내가 직접 버렸던 봉투는 옆 동 쓰레기장에 버렸던 것 같은데 그 얘기를 듣던 남편은 그럼 한번더 볼까? 하고 위생장갑을 끼고 나섰다. 그로부터 몇 분 뒤. 반지 케이스를 찾았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이런 기적이!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쓰레기 수거일과 수거일 사이에 쓰레기를 버려서 반지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거하게 액땜을 하고, 기력을 다 소진한 채 밀린 빨래를 해서 널고, 건조기를 돌려놓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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