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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2424

보일러 한번 설치하기 힘드네

by 아님말지머 2021. 10. 26.

시작은 컨덴싱 보일러 설치 지원금이 소진되기 직전이라는 얘기를 듣고부터였다. 15년된 보일러를 교체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알아본 업체와 통화 후, 지원금을 안전하게 받기 위해 원래 시작하기로 한 공사날짜를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컨덴싱 보일러를 설치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근처에 배수구가 있는 지 여부였다. 아직 현관 비번을 받지 못한 관계로 공인중개사님이 대신 봐주기로 했는데 기존 보일러가 설치된 공간이 베란다가 확장된 주방쪽이라 정확히 확인이 불가능한 것 같았다. 다시 업체 직원과 통화하면서 보일러가 주방 근처에 있다고 하니 그럼 되겠네요~(여기서부터 잘못 됨)해서 그런줄 알고 설치기사와 약속을 잡게 되었다. 

 

설치를 하기로 한 날 아침. 설치 시간을 놓고도 뭔 일이 있었으나 너무 긴 관계로 생략, 어찌어찌 원래 잡았던 시간에 중개사와 우리부부, A업체 설치기사가 모였다. 

 

A업체 설치기사: 아우~여기다 설치불가능해요. 여기를 다 막으면 어떡하나. 컨덴싱도 설치 못해요.

울 부부: 네에??

 

문제가 됐던 부분은 예전에 확장을 하면서 환풍구와 계량기 주변, 심지어 밸브까지 싹다 나무로 막아놔서 다 철거를 해야 설치가 가능한데, 배수구도 보이지 않아서 컨덴싱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A업체 설치기사는 아침부터 두시간을 달려왔는데 허탕을 쳤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망연자실도 잠시, 공인중개사님은 이 동네 보일러업체에 연락해서 현장에 와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 아파트에 설치를 한 경험이 여러번 있기 때문에 배수구는 확실히 있을 거라고 얘기해서 안심이 됐다.

 

B업체 설치기사: 배수구는 있어요, 있는데, 여기를 다 뜯어야돼요. 이렇게 다 가려놓는건 위법하고, 너무너무 위험천만하고..어쩌구 저쩌구..

 

원래 약속된 철거날짜는 3일 뒤. 즉, 오늘 설치는 불가능하다는 말씀. 거기다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소유권이전이 되기 전이라 지원금신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유권이전을 한 이후, 즉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고 난 뒤에 설치를 하던지(대신 지원금이 소진되서 못받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지원금을 포기하고 그냥 설치를 하던지 선택을 하라는 말씀. 고민끝에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지원금은 포기하고 공사중에 설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철거하기로 한 공간외에 일이 늘어났으니 인테리어 사장님과 통화를 하고, 철거일 당일 우리부부와 만났다.

 

인테리어 사장님: 여기 뜯으면 다시 복구가 불가능해요. 우리가 목수를 안불렀기 때문에 어쩌구 어쩌구...대충 붙여놓는다해도 단열이 안되고...블라블라..

 

 

도배, 장판, 필름, 붙박이 장만 짜는 공사라서 중간에 목수가 등장하는 기간이 없다는 말씀. 급하게 섭외도 불가능하단다. 나는 다시 새 보일러를 설치하는 대신 너덜너덜한 공간에서 지내느냐 vs 언제 고장날지 알 수 없는 오래된 보일러를 안고 위험한 환경에서 지내느냐를 선택하게 됐고, 전자를 선택했다. 살다가 중간에 고장나면 어차피 다 뜯어붙여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 결과가 어떻게 됐던 공사중에 일을 마치고 싶었다. 

 

보일러 주변에 붙어있던 것들을 다 떼어내고 새 보일러로 교체를 했다.

 

B업체 설치기사: 원래 바닥에 배수구가 있어야 만약에 물이 샜을 때 빠져나가는데 이렇게 공사를 엉터리로 해놓는 바람에 물이라도 새면 여기 다 물바다 되는거에요. 여기만 물바다가 되면 다행이죠, 만약 아랫집으로 누수라도 되면 어쩔거에요. 인테리어 사장님하고 상의해서 원래대로 복구를 하던지 물이 샛을때 빨리 알아차리도록 조취를 취하세요. 인테리어업체들이 설계도를 보고 안전한 방법으로 공사를 해야되는데 양심도 없고 블라블라...

 

내 귀에는 '물바다', '누수' 이 두 글자만 들어왔다. 누수라면 치가 떨리는데 이제와서 다시 처음 건설했을때처럼 복구를 하려면 벽을 다 허물고 바닥을 다 뒤집어야 한다는 소린데 7일동안 잡아놓은 공사기간 중에는 어림도 없고, 그놈의 목수도 없어서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대신 확장된 주방공간을 다시 분리시키고, 어설픈 단열문제도 잡기위해 중문을 설치하기로 했다. 다행히 다른 현장에 있는 목수를 잠깐 섭외해서 뜯어진 공간을 복구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문+목수섭외로 뜻하지 않은 돈이 나가게 된 건 덤. 완전히 문제해결이 된 건 아니지만 처음 걱정했던 것 보다는 나은 상황이었다. 

 

지금 살고 있던 집으로 돌아오자 교체한 지 몇년 되지 않은 반짝반짝한 보일러가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 전환되면서 대대적으로 배관공사와 보일러 설치를 했었는데 이 멀쩡한 보일러를 놔두고 개고생을 하는게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 보일러 사태를 겪으면서 얻은 교훈. 인테리어 공사를 준비하면서 인스타나 오늘의 집에 나온 사진과 비교하며 어떻게 예쁘게 꾸밀까 고민하는 건 두번째 문제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열, 배관 등 기본 설비문제를 가장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라고는 처음 겪는 우리가 이걸 알 턱이 없지. 다음 이사때부터는 싼 집을 사서 뒤집어엎을 생각이다. 확장된 집이라고 다 고쳐졌을거라 믿은 내가 어리석었지. 거기다 가구들이 다 나가고 난 뒤 보이는 곰팡이들은 어쩔 것이여. 걸레받이 쪽은 생각도 못했는데 너무 더러워서 아이방만 필름으로 붙이기로 했다. 걸레받이 작업 또한 목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두번째 교훈은 '목수'는 소중하다는 것이다(?). 왠간하면 목수를 섭외해서 다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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