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키링을 뜨기 전에 나는 두 가지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었다.
하나는 작은 걸 만드니까 수월할 것이다.
둘째는 뜨개를 하면 마음이 차분해질 것이다.
둘 다 절레절래였다. 2.5mm의 가느다란 대바늘로 얇으면서 잘 갈라지는 실을 뜨고 코를 세려니 눈이 뽑아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세네 번씩 실을 풀었다가 다시 하면서 점점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다. 풀었다가 바늘을 다시 넣는 것도 굵은 실은 잘 되는데 이 얇은 실은 한 번에 꿰어지는 법이 없었다. 급기야 내가 바느질을 할 때 누가-남편 or 아이- 말을 걸면 분노의 샤우팅을 하게 되는데... 며칠 전에 엄마와 통화할 때 무슨 얘기를 하다 난 어릴 때 순해서 사춘기도 수월하게 지나갔다는 내용을 말했었다. 근데 다 커서, 아니 다 늙어서 왜 성질이 이모냥이 됐을까? 역시 '지랄 총량의 법칙'은 인생 전반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뜨개가 불쏘시개 노릇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얇은 실에 질려버려서 이젠 무조건 굵은 바늘! 굵은 실!을 다루고 싶어졌다. 서치를 해보니 실이 굵어질수록 질이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흑흑. 일단 양말실을 샀으니 키링 말고 내 발에 맞는 양말을 뜨긴 떠야 할 텐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굵은 실로 일단 조끼를 떠볼까 생각 중이다. 오히려 양말보다 쉬울 수도 있고?
고무 뜨기 한 부분만 다시 풀어서 뜰 법도 했지만 저땐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나 몰라라 하고 돗바늘로 마무리까지 한 상태라 되돌아가기 싫었다. 대바늘 뜨개 고수들이 판 치는 이 세상에서 이런 하수들도 있어야 고수들이 더 빛나는 법. 오늘도 난 쩌리의 미덕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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