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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푸념

아이와 차례로 장염에 걸린 후 저 세상 갈뻔한 사연

by 아님말지머 2020. 11. 27.

지금까지 장염이라고 생각했던 건 장염이 아니었음을...뭘 잘 못 먹으면 몸살이 걸리고 구토를 해도 이틀이면 나았는데 이번에는 설사만 5일을 하니 죽을 맛이었다. 이 블로그의 최고 인기글(...) '고열을 동반한 장염'에 이은 두번째 장염 투병 이야기다. 그 글에선 "애가 아프면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하는데 막상 내가 아프면 '역시 보호자인 나부터 건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애가 아프면 '차라리 내가..'의 무한반복. "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거의 동시에 아파보니 '아프려면 누구든지 한명만 아파야 한다'가 진리인 것 같다.

쓰다보니 이야기가 넘 길다.

 

 

Day1. 아이 장염시작

     

하원 후 저녁때부터 "엄마 나 똥싸러 갈께~~" 이 소리가 세번째 이어지면서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배가 아프다고 하기 무섭게 화장실을 자꾸 가더랬다. 특별히 새롭게 먹은 것도 없고 평상시와 다를바 없던 식사를 했기 때문에 원인도 모르겠다. 유치원 등원하기 전에는 대변을 두번 봤는데 대변상태가 약간 좋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아이한테 물어보니 유치원에서도 한번 쌌다고 했다.

 

   

  

 

Day2~3 화장실 문지방이 다 닳을 수 밖에 없던 사연

   

소아과에 데려갔더니 역시나 장염이 의심된다며 정장제와 유산균을 처방받았다. 상태로 봐서는 열이 날 것 같진 않고 흰죽 내지는 질게 지은 흰밥 위주로 먹이고 유제품을 비롯한 간식은 주지 말라고 했다. 자꾸 배고프다고 하는 아이와 그것을 말리는 나. 한 시간에 한 번꼴로 화장실을 갔고 나는 엉덩이를 닦았네...변기물을 몇 번을 내렸는지 모르겠다. 3일 동안 서른 번은 쌌나? 둘째 날과 셋째 날 사이 새벽에는 두 번을 깨서 화장실을 가기도 했다. 그래도 이때의 나는 사람 꼴을 하고 있었으니 좋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Day4. 아이는 좋아지고 나는 안드로메다로

 

아침에도 화장실을 줄기차게 갔는데 정작 소아과에서는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면서 유산균만 받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 싶었는데 집에 데려 와보니 과연 오전에만 배변을 몇번 하고 오후에는 전혀 가지 않았다. 나는 점심 먹은 게 조금 얹힌 느낌이었지만 골뱅이무침과 간장치킨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했다. 그때까진 좋았는데 회사일로 신경 쓸 일이 생겼더니 가슴이 벌렁거리고 갑자기 몸살이 온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밤새 설사 행 열차를 타게 되었다.

 

   

 

Day5. 저녁이 되자 아이와 나 모두 발열, 그와중에 생리시작

    

하필 일요일이라 병원도 못 가겠고 몸살기운은 어제에 이어 계속됐다. 이 와중에 생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나더러 죽으라는 건가?? 체온은 37.5~6정도였고 몸살기 때문에 타이레놀을 먹었다. 흰죽만 먹었는데도 계속 설사를 했다. 이번 주에 내가 변기 물을 몇 번을 내렸더라?? 아이는 어제처럼 아침에만 두어 번 큰일을 보고 오후에는 소변만 누었다. 밤이 되자 갑자기 아이가 38도 초반대로 열이 났다. 해열제를 먹이려고 했으나 거부했다. 나도 역시 비슷한 체온이었고 타이레놀을 한번 더 먹었다.

 

     

 

Day6. 등원 후 조퇴, 나는 지옥행열차 탑승

   

나흘 동안 집에서 뒹굴뒹굴했는데도 지루하지도 않았는지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아이. 아침에 일어나 두 번 대변을 보았고 변상태는 많이 좋아졌으며 체온은 37.3도 정도였다. 평상시에도 열체크를 하면 37.2~3도쯤이었기 때문에 그냥 유치원에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12시가 넘은 시각, 갑자기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왜 유치원에서만 전화가 오면 심장이 벌렁거리는지...점심먹기 전에 열체크를 했는데 38도가 넘었다고 했다. 마침 반차를 내고 있던 남편이 아이를 데리러 갔고 나는 아이와 함께 소아과에가서 같이 진료를 보았다. 나는 이날 아침에 굶었기 때문인지 점심 무렵에서는 설사가 잠잠하던 차였다. 아이가 열이 났다고 하자 의사는 여기저기 살펴보았는데 목이 부었다거나 하지는 않고 장염이 아직 덜 나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항생제를 추가한 약을 처방했다. 아이는 낮에 열이 다시 올라서 해열제를 먹였다. 저녁때 포함 두번 먹였는데 둘다 38도 초반대였다. 나도 약을 타와서 같이 먹었고 점심, 저녁을 어제처럼 흰죽만 해서 먹었는데 설사가 점점 심해졌다. 어제에 이어 밤에도 몇 번씩 깨서 화장실을 가려니 죽을 맛이었다. 원래도 생리를 하면 설사를 자주하는 편인데 같이 맞물려서인지 아주 끝장을 보는 것 같았다. 물설사가 쭉쭉 나왔다.

   

 

 

Day7. 아이는 회복, 나는 이미 지옥이네

     

이날도 아침에만 두번 큰일을 본 아이는 거의 완전히 회복한 듯 보였고 더이상 발열도 없었다. 대신 나는 죽어가네...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갔는데 생리와 설사...여기까지만 하자. 이대로 죽을 순 없어서 오전에 수액을 맞으러 동네 A내과를 찾았다. 처음 질병이 시작된 히스토리를 쫙 읊고 있는데 의사 표정이 묘했다. 집에 다른 환자가 있는지 물어보고 하루에 열번 넘게 설사를 했다고 하니 너무 심하다고 입원을 해야겠다고 했다. 증상을 봐선 장염이 맞는 것 같긴한데 코로나 증상중에도 설사와 몸살, 발열 등이 있으니 2차 병원에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 후에 수액치료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싶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치료를 못해줘??? 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진정한 후에 의사가 권한 B병원에 전화를 해서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냐고 했다. 그랬더니 이미 마감이라했고 8시쯤이면 번호표가 마감된다고 했다. 여기서 코로나 검사받자고 다음날 아침부터 번호표 받자니 거리에서 비명횡사를 할 것 같아 동네에 있는 대학병원C에 전화를 해서 물었더니 수액치료나 처방 다 안되지만(?) 코로나 검사는 해준다고 했다. 비용도 36천원대여서 생각보다 싸길래 여기서 검사를 받기로 했다. 혹시나 전화를 걸어 본 보건소는 연결이 계속 되지않았다.

 

 

점심 전 병원마감시간이 되기 전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남편이 나와 아이를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마감직전에 겨우 검사받는 곳을 찾아서 검사를 받았다. 아프면 어쩌나 싶었는데 예상외로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대신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었다. 만에 하나 양성이면?? 난 이 지역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건가?? 사실 그전부터 목만 살짝 아파도 코로나가 아닌가 의심했었고 이번에도 혹시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이건 뭐 빼박 코로나 증상이여서 설마설마 싶었었다.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스치고 여전히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저녁 6시가 되기 전에 드디어 뜬 음성문자ㅜㅜ. 살면서 이렇게 반가운 문자가 또 있었나 싶었다.

   

 

하지만 이미 저녁시간이라 동네 병원은 다 문을 닫을 시간이고 응급실까진 오버인 것 같아서 하염없이 나오는 설사와 함께 다시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세끼를 거의 다 굶다시피 했고 어제 소아과에서 받은 약도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약이라도 먹어야 했나 싶은데 그땐 약도 먹기 싫고 속으로 내과를 다시 가는게 낫지 않았나 싶은 마음이었다(소아과는 죄가 없음).

 

   

 

Day8. 날아다니는 아이와 의식이 흐려지는 것 같은 나

     

아이는 아침에도 더는 설사를 하지 않았고 나는 계속했다^^. 동네에 있는 또 다른 내과D에 내원했다. A내과와는 달리 그냥 대충 언제부터 설사를 했는데 굶을때만 잠깐 괜찮고 조금만 먹어도 많이 나온다, 라고만 했다. 어차피 난 코로나 음성이고 당당하니께. 의사 역시 꼼꼼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서 더이상 묻지도 않고 배를 몇번 눌러보고 소리를 듣더니 아 그래요 그럼 처방해드릴테니 드시고 수액치료 받아실래요?했다. 열도 없고 해서 이틀정도만 약을 먹으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새로 생긴 지 몇 달 됐는데도 병원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의사도 별로 신뢰가 가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과연 낫기는 할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이틀 전에 여기를 왔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액을 맞을 수 있었을 텐데. 드디어 고대하던 수액을 맞았다. 그런데 인터넷 후기로 보던 즉각적인 효과는 전혀 없어서 시무룩한 채로 집에 누워있었다. 한 시간 정도 누워있었더니 갑자기 의식이 또렷하게 돌아왔다(그렇다고 그전에 기절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서 집안을 좀 걸어다닐 수 있었지만 장시간은 여전히 어려웠다. 오후에는 남편이 회사를 가서 아이와 단둘이 있었는데 기운이 없어서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어제에 이어 몇 끼니를 굶었더니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아파죽어도 애는 굶길 수 없으니 일어나서 저녁을 대충 차려주고 나는 도로 누웠다. 저녁이 되니 배변횟수가 좀 줄어들었고 생리양도 확 줄었다. 정말 오랜만에 새벽에 화장실을 가지않고 쭉 잘 수 있었다.

 

   

 

 

Day9. 아이 등원, 약간 정신을 차린 나

   

정상체온, 정상 대변을 확인 후 재택근무인 남편이 아이를 등원시켰다. 저녁부터 설사를 하지 않게 된 나는 식사를 하면서 점점 기운을 차렸다. 오후에는 직접 하원을 시키고 학원에 데려다 주었다.

 

   

 

Day10. 지사제를 너무 많이먹었나 싶은데?

    

처방받은 약은 어제 다 먹었고 오늘 아침에 문득 약봉지를 보는데 '지사제' 두 글자가 보이고 설사가 멈추면 복용을 중단하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 약봉지를 맨날 봤는데 왜 저 문구가 눈에 안들어왔었지????? 그러고 보니 약국에서도 뭐라고 뭐라고 한 것 같은데 그땐 의식이 흐릿해서 말이 귓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저 말에 따르면 어제 오전부터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ㅜㅜ. 이젠 변비를 걱정해야하나...아무튼 아침에도 누워있었더니 몸살기가 올락말락하길래 일부러 일어나서 움직이고 소고기미역국을 배달시켜 한사발 먹었더니 이제 좀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맨날 백미만 먹고 그나마 거의 굶다시피 했더니 영양소가 부족했나보다. 5일동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선 대략 80%정도 컨디션을 회복한 것 같다.

  

 

  

 

 

그리고 느낀 점.

 

 

 

내가 구토를 하지 않은 걸로봐서는 심한 장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길게 고생했던 이유는 첫째, 하필 주말에 아프기 시작해서(아이도 그렇고 꼭 어디가 아프면 주말이다). 아프자마자 다음날 내과에 가서 처방을 받았다면 금방 좋아졌을 것 같다. 둘째, 빌어먹을 생리때문에. 생리기간중에 장을 자극하는 호르몬이 나온다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놈이 주범같다. 셋째, 망할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A내과에서 바로 치료를 받고 나도 더 빨리 나았을것이다. 따라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같은 기간에는 절대!! 아프면 안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뼈져리게 느꼈다.

그리고 또 하나 가슴 깊이 느낀 점. 애가 없이 혈혈단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회사에 가고 집에 없는 사이, 유치원에도 못 가고 있는 이 아이와 함께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을지를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지금은 만에 하나 엄마찬스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숨통이 트이지만 내년부턴 지방으로 내려가실 계획이라 이제 아프면 오로지 남편한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에 매인 몸이라 자주 휴가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번엔 마침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게 돼서 그나마 병원에도 가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면 어찌 됐을지 앞이 캄캄하다. 이래서 둘이 거의 동시에 아픈 일은 없어야 된다. 그치만 그게 뭐 뜻대로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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