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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아무래도 좋을 그림

by 아님말지머 2015. 12. 16.
현재 나에게 사치스러운 행위를 두 가지 꼽으라면, 하나는 밥 천천히 먹기, 또 하나는 양질의 책을 곱씹어 보며 읽기를 들 수 있다. 식사와 독서 모두 아기가 자거나 잠깐 어딘가 집중하는 틈을 타서 하니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되도록 술술 넘어가는 것 위주로 고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이 책은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다.

건축학도 출신인 저자가 여행지의 풍경을 만년필로 그리고 정갈한 글을 덧붙인 책으로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까지 더해져 있다. 읽다보니 왜 저자가 7년 연속 파워블로거로 선정 됐는지 알 것 같았다. 지식인들은 많지만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헤아릴줄 아는 사람은 귀하다.

밤이면 방바닥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을 붙들고 가벼운 글들만 읽는게 일상이 됐는데 이렇게 제법 묵직한 글들을 읽는다는게 감개무량했다. 거기다 만년필과 잉크에 대한 배경지식도 덤으로 얻을 수 있게됐다.


아래는 이 책에서 본 인상깊은 구절이다.

보란듯이 성공하겠다는 사람의 얼굴엔 스스로에 대한 애정보다 우울과 증오가 멜라닌 색소처럼 짙게 덮여있다. 삶과 자신에게 날이 서 있는 사람은 그 세월을 지나며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내기 마련이다.
-'차라리 꿈이 없는 사람'중-

그냥 사는 것. 뜻에 집착하지않고 남루한 대신 어떤 절망에도 붙들리지 않은 채 무덤덤하게 순간들을 채워가는 것. 대만이란 작은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저력도 여기에 있었던게 아닐지.
-'삶의 가장 벅찬 경지'중-

여행지의 풍경은 도시의 외부보다 자기의 내면에 의해 결정된다.
-'소극적인 욕망'중-

나는 그저 사는 동안 주변의 좋은 것들을 실컷 즐기다 잘 죽기만 바라야겠다.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ㅡ로러&클링너 잉크'-

하지만 참혹한 건립과정이 없었다면 이런 규모가 가능했을 리 없다. 현세 캄보디아인들에겐 앙코르와트가 달러박스로써 축복이겠지만 당시 앙코르왕국 백성들에겐 재앙이었을 확률이 높다. 발터 벤야민이 "문화라고 기록된 대부분의 역사가 야만이다"라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앙코르와트' 중-

몇백만의 죽음이란 실로 끔찍하지만, 자칫 규모는 소중했을 개인의 삶을 가려 더럽고 추악했던 역사를 희석시킬 우려가 있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공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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