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초등시절을 지배했던 만화 중 하나인 '아기공룡둘리' 극장판이 리마스터링 돼서 재개봉한다는 소식에 아이와 함께 극장에서 관람을 했다. 이 극장판을 TV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상태에서 영화를 봤다. 이렇게 기억력이 흐릿한 나이에 유년시절 추억이 가득한 만화를, 그때 그 시절의 나와 비슷한 또래가 된 아이와 함께 본다는 것 자체가 뜻깊은 일이었다.
그러나 추억과는 별개로 이 만화영화에 큰 점수를 주기는 힘들 것 같다. 거의 30년의 세월의 지난 작품이기 때문에 요즘 시대상과는 맞지 않는 유머코드와 성인지감수성은 그렇다 치고, 중간중간 들어가는 뮤지컬 시퀀스는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 게 아니고 지루하게 만들었다. 지구에서 우주 한복판을 거쳐 얼음별까지 다녀오는 과정에서 캐릭터들이 성장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아기공룡둘리'의 진가는 극장판이 아니라 TV애니메이션에 있으므로 극장판으로만 둘리라는 만화를 평가할 수는 없다. 아기공룡둘리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주인공 둘리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착하고 납작한 캐릭터가 아니라 저마다 못되고 영악한 부분이 있고, 실 생활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생김새를 제외하고-성격이라는 것이다. 어른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요구되는 착하고 순종적인 어린이상을 거부하고 마음껏 본능을 표출하며 고길동으로 대표되는 어른을 괴롭히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 당시 어린이들은 해방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런 어린이들의 시선에서 영화를 보고자 노력했으나 이미 중년으로 접어든 나이에서 보니 둘리녀석들이 저지르는 일에 기함을 하고 고길동 입장에 자꾸만 빙의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각자 나이에 맞게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함께 영화를 본 아이의 감상을 물으니 '엄청 재밌지는 않은데 나쁘진 않다'라는 평을 내놨다. 그래서 끝나기 30분쯤 전에 나가자고 했니??^^
어른이 되서 다시 보니 새롭게 눈에 들어온 점을 적어본다. 희동이가 이 만화의 진짜 빌런이었구나, 그 말썽꾸러기 둘리가 희동이 하나는 알뜰살뜰 잘 챙기는구나, 또치, 도우너, 마이콜 중 특히 또치가 의리가 없구나라는 것. 그리고 길동이 아저씨 꽤 잘 사는구나^^ 그 당시 쌍문동 집값이 얼마인 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방이 널찍널찍하게 잘 빠졌고, 그릇개수가 어마어마한 걸로 봐서는 최소 중산층 이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카인 희동이를 길동이 돌보고 있는 사연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썩 만족스럽게 보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둘리와 둘리엄마가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별장면을 길게 끌지 않은 점도 좋았다. 생각보다 둘리가 자기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잘 살겠구나 하고 안심하게 된다. 고길동 집에서 여전히 지지고 볶으며 아이답게 잘 살고 있을 둘리와 그 일행들의 행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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