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만화를 처음 접한 게 고1 때였나 그랬다. 친구에게 빌려온 만화책을 단숨에 읽은 뒤, 2부 연재가 시작되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sbs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도 꼬박꼬박 챙겨보고, 완전판이 발매되자마자 한두 권씩 모으는 재미에 빠졌다. 오직 국내 순정만화만 팠던 나에게 스며든 유일한 소년만화였다.
이번에야 알게 됐지만 완전판 초판은 낱장이 잘 떨어지는 이슈가 있어서 금방 절판되고 양장본인 프리미엄판으로 다시 나왔다고 한다. 다행히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예전 집에서 햇볕에 노출돼 표지가 바랬을 뿐...내가 슬램덩크와 멀어진 사이 오리지널판, 신장재편판 등 여러버전의 만화책과 일러스트레이션 화보집, 슬램덩크 그로부터 10일 후 등등 관련 책이 나왔다. 대신 난 이 잡지를 갖고 있다.
2005년, 인터넷 서점에서 일본 잡지 쪽을 무심히 보다가 'SWITCH'라는 잡지에서 슬램덩크 관련된 특집을 다루고 있길래 구매해서 그림만 휙휙 보고 간직하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꺼내 볼 일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게 거의 20년 뒤일 줄은 몰랐다. 2004년 12월, 슬램덩크 1억 부 판매 기념으로 작가가 어느 고등학교 23개 교실 칠판에 '슬램덩크 그로부터 10일 후'라는 내용으로 4일 동안 그림을 그리고, 3일간 전시한 후 2시간여 만에 다 지워버렸다.
잡지에는 그 작업과정과 그림 일부, 행사장을 찾은 팬들이 남긴 메세지 등이 실려있고, 슬램덩크와 더불어 당시 연재하고 있던 리얼과 베가본드에 관한 작가인터뷰가 담겨있다. 일본어를 공부하긴 했지만 긴 인터뷰를 읽기엔 역부족이어서 덮어두고 있었는데 그 사이 파파고라는 신문물이 개발돼서 드디어 본 내용을 파악하게 되었다.
세월이 훌쩍 지나 북산과 산왕전 경기가 극장판으로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심드렁한 마음에 CGV에서 받은 할인권도 그냥 날리고, 예매도 했다 취소했다를 반복하다, 안 보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빙판을 예매했다. 별 기대 없이 극장에 들어섰고, 송태섭의 과거로 시작되는 서두에서는 그냥 그런 마음이었지만 비트감 있는 O.S.T가 흘러나오면서 스케치된 주인공들이 걸어 나오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무덤 속에 있는 줄 알았던 슬램덩크 덕후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몇 번을 반복해서 본 만화책의 익숙했던 장면이 눈앞에서 3D로 재생되는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경기 마지막 부분에서 극장에 있는 모든 관객들이 숨죽였던 그 순간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한 송태섭을 극장판에서 부각하고 싶었다던 원작자의 마음도 이해가지만 어쨌거나 주인공인 강백호가 더 부각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나의 원픽 서태웅의 풀리지 않은 서사와 함께 다섯 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고루 분배했으면 어땠을까. 원작만화에 나온 산왕전과의 경기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도 빠진 부분이 있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모든 장면을 다룰 수는 없을 테니까 그 점은 납득가능했다. 자막판도 보고 더빙판과 비교하고 싶었지만 주말마다 이어지는 행사와 아이 방학 때문에 영화를 보러 갈 틈이 나질 않는다. 하루빨리 VOD가 풀리기를 바랄 뿐이다.
후속편이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젠가 나온다면, 그게 20년 뒤일지라도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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