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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푸념

백마흔 다섯번째 육아일기

by 아님말지머 2022. 4. 26.

세상만사가 그렇듯 이제 좀 키울만 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위기가 찾아온다. 바로 어제 낮에만해도 스스로 알아서 학원 필통을 열어 연필을 깎고(전에는 시켜도 나중에 한다고 튕겼다), 넘어져도 짜증내지않고 툭툭 털고 일어서길래 '아,, 우리아이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는 구나. 이 벅찬 감정을 블로그에 써야지.' 라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다. 오늘 학교에 행사가 있어서 운동화와 간편한 복장을 입고 오라고 알림장이 왔는데 바지 입기 싫다, 운동화신기 싫다, 학교는 언제 쉬냐부터 시작하더니 밤에는 왜 자기 귀에는 귀지가 없냐며(귀 파주는 걸 좋아하는데 귀지생성까지 대략3주는 기다린듯하다) 눈물을 뽑았다. 웃긴 건 오늘 아침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까지 '왜 나만 바지를 입어야 돼?' 이러더니 자기가 치마를 입은 걸 문득 깨닫고는 머쓱해져서 들어갔다. 어제처럼 트레이닝복에다 운동화를 신기를 권유했지만 아래 위 풀세트로 흰색을 입겠다는 걸 뜯어말려 운동화에 치마로 합의를 봤던 사실을 까먹은 모양이다. 가끔보면 '짜증을 내기 위해 짜증을 내는' 것 처럼 보인다. 곧 찾아올 사춘기 시절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래도 좀 컸다고 미용실에서 동영상을 보지 않고도 가만히 앉아서 롤로 머리를 다 말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다. 두세살 때는 머리에 가위가 닿는 순간부터 눈물을 흘려서 입에 치즈를 넣어주고 눈앞에 뽀로로 영상을 띄워드렸는데 장족의 발전이다. 직모에다 처음하는 펌이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컬이 잘 나왔다. 옷은 여전히 샤랄라하게 하고 다니지만 머리는 핀도 안 꽂고 너무 내추럴하게 다녀서 펌이라도 해라, 하고 시도를 한 거였다. 

 

얼마전에 본 오은영박사님 영상속에는 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 인사를 잘 안하려는 아이 머리를 굳이 수그려서 억지로 인사하게 하고 '너 왜 그렇게 버르장머리 없이 얘기하니? 쓰-읍' 이런식으로 꾸짖는 화법 등등이다. 오은영박사님 말씀의 요지는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끔 기다려주라는 것 같다. 내 아이가 다른사람에게 버릇없어 보일까봐 강압적으로 얘기한다고 해서 교정이 잘 되지 않으니, 옆에서 좋게좋게 계속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고분고분한 말투가 아니라고 화내지 말고 가령 '알았어!!'라고 한다면 '그래 알았다고 했다?' 라고 넘기는 아량도 필요한 것이다. 단, 도가 지나치지 않게 상한선은 제시를 해줘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영상을 보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다.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이 아이는 나와는 다른 사람,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내 뱃속에서 나왔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저 아이는 핏줄이긴 하지만 타인이다! 

 

 

 

 

 

 

 

버릇없는 아이 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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