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목적지는 서촌. 얼마 전 경복궁도 다녀오긴 했지만 긴 방학중에 외부인(?)과 만나는 날이어서 기분이 남달랐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버스가 한참 동안 오지 않아서 다음번엔 기필코 역세권으로 이사를 가리라 또 한 번 다짐했다. 시청역에서 내려 버스정류장까지 걷는데 스피커를 통해 퍼지는 설교 음성이 들렸다. 광화문 전체가 울릴 것 같은 큰 소리에 더해서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덧붙여지는 영어 통역소리가 귀를 찔렀다. 이 시끄러움의 정체는 '전국 주일 연합 예배'였고, 길 한복판은 의자에 앉아있는 신도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필 정류장 바로 건너편이 목사가 서 있는 자리여서 어쩔 수 없이 큰 소음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그런데 목사가 너무 낯이 익단말이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싶어 이제야 찾아보니 전광훈이 맞았다. 실시간으로 눈과 귀가 썩어가던 이유가 있었군. 아니 예배를 하려면 자기네들 교회에 가서 하던지 강당을 빌려서 할 것이지 왜 애먼 시민들까지 소음에 시달리게 하는지 모를이다. 어휴.
이렇게 기가 쪽쪽 빨린 채로 01A를 타고 청와대 앞에서 내렸다. 가는 길이 꽤 복잡해서 길치인 내가 목적지를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찌어찌 지도를 보고 운좋게 레스피레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예쁜 외관이 마음에 들었다.
소금빵이 유명하대서 소금빵과 얼그레이 화이트초코빵 한 개, 레스피레 토스트 세트 하나를 주문했다. 토스트 세트 앞에 붙어 있는 영어를 더듬더듬 읽어보려는데 옆에 있던 동행분께서 카페이름과 동일하다고 가르침을 주셨다. 쫌 민망했지만 큐알코드 찍는답시고 카메라가 아니라 액정방향으로 폰을 들이대던 적도 있어서 이 정도쯤이야^^ 그런데 또 하필 체크카드가 잔액부족으로 떠서 한번 더 머쓱했다.
카페 분위기는 이렇게 잔잔...차분...했다. 미세먼지로 뿌연 바깥풍경과 어쩐지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레몬티는 리필할 수 있는 물도 따로 주고 별로 달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당근라페!! 레시피가 궁금해지는 맛이었다.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새콤한 맛이 나던데 여기 당근 라페는 신맛이 없고 적당한 감칠맛이 나면서 부드러웠다. 아쉬웠던 건 프렌치토스트가 아니라 그냥 토스트로 나왔다는 것이다. 사진으로는 프렌치토스트처럼 보였는데... 하지만 그 덕에 샌드위치로 만들어먹긴 좋았다. 소금빵은 방금 구워서 나온 게 아니라 그런지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얼그레이 화이트 초코빵은 예상 그대로 달달했는데 다만 겉이 코팅된 게 아니라 녹아 있어서 의외였다.
오늘 대화의 주제는 인간관계.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정착한 뒤로 인간관계망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서 그로 인한 고립감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새로운 누군가를 사귀려고 하면 뭔가 타이밍이 안 맞고 다가오는 사람도, 피드백도 없을뿐더러 기존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모조리 이사를 가고 상대방쪽에서 연락이 뜸해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 가까운 거리라서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오히려 먼 지방으로 간 지인만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각자 새터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 대고 나 혼자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던 건 아닌지. 혹시 그동안 삼재라서 인복이 달아났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다. 돌이켜보면 내 성격에 사람들로 북적였던 시절이 유난히 운이 좋았던 것(당시엔 속 시끄러운 일도 있었지만)이고 지금이 원래의 자리를 되찾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긴 세월동안 내 곁을 지켜준 소수의 학창시절 친구들로 만족을 해야할 시기인 것 같다.
다음 행선지는 슈타이들 북컬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그라운드시소 서촌점. 처음에는 여기가 전시장인줄 알고 갔는데 같은 이름의 카페였다.
여기가 입구. 입구 쪽이 한산해서 전시 막바지라 사람이 없나 보다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관람객이 꽤 있었다.
전시는 2층부터 4층까지 이어져있고, 직접 책이나 종이를 만져볼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슈타이들과 함께 책을 제작한다는 것은 아티스트의 커리어가 정점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세계사진협회가 전하는 이 문장하나로 출판계에서 슈타이들이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다.
2층에는 출판과정에 대한 내용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나름 아트북도 좋아하고 책에 대한 관심도 많다고 자부했는데 그게 꼭 출판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좁은 공간에 전시물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다 보니 집중해서 하나를 바라보기가 쉽지 않았다. 전시공간 자체로도 영감을 주는 그라운드시소 센트럴 지점과 비교해서 아쉬운 면이었다. 거기다 귀로는 배우 박정민이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다녔더니 더 이도저도 아닌 게 됐다. 보통은 작품 앞에서 해설을 들으며 이동하는데 동선이 자꾸 꼬이다보니 이 해설이 여기에 대한 내용이 많나? 하고 자꾸 확인하게 되면서 몰입이 방해됐다. 그렇다면 안들었으면 되는 일 아닌가요? →해설을 듣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어서요. 글구 이어폰 빼기도 귀찮았...
3~4층에서는 짐다인, 다야니타 싱, 테세우스 찬 등 3명의 스페셜 아티스트들이 직접 설치하고 연출한 공간과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명품브랜드 및 유명아티스트와 협업한 작업물에 그나마 눈길이 갔다. 나 왜 동태눈깔이 됐을까...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런 사진들을 좋아한다. 이런 사진이 어떤 사진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설명할 길이 없지만.
2층에는 사람이 몰려있더니 4층은 한산했다. 이곳은 테세우스 찬의 공간. 저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게르하르드 슈타이들 씨를 만날 수 있다. 얼마나 완벽주의자인지 설명을 보고 듣고나서인지 상당히 깐깐해 보인다.
라이브러리에서 몇 권의 책을 휘리릭 넘겨보는 것을 끝으로 관람을 마쳤다.
굿즈샵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만난 곳. 집에도 틈새공간에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싶지만 그 '틈새'조차 없다. 흑.
굿즈샵에서라도 뭔가 건질만한 게 있겠지 했는데 아무리 봐도 구미가 당기는 게 없었다. 카드 긁을 만반의 준비를 다 해왔는데요??
대신 전시관람후기 설문을 마치면 주는 엽서를 한 장 받아왔다. 오른쪽은 티켓 대신 받은 한 장짜리 리플릿. 아니 책 관련 전시회면 티켓을 북마크형태로 인쇄하면 좋지 않나? 이제 별 걸 다 꼬투리를 잡고 있다.
거의 대다수 후기가 호평일색이라 이번 전시가 만족스럽지않은 것은 내 얕은 식견이 따라와 주지 않았던 탓이라고 여겼다. 내 눈높이에는 '미피전시회'같은 게 딱일지도ㅠㅠ. 수박겉핥기식의 이런 관람은 남는 것이 없기에 다음 전시회부터는 미리 사전조사를 많이 하고 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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