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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푸념

괜찮아, 시간은 좀 걸려

by 아님말지머 2021. 12. 2.

처음 보낸 영어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니, 아이 눈 밑이 새빨갛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수업시간 내내 울었다고 한다. 나를 보더니 왜 엄마는 집에 가버렸냐며 화를 내더니 또 울었다.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아이 때문에 수업에 지장이 있던 게 아닐까 하는 복잡한 심경을 안고 집으로 걸어왔다. 오는 도중에 갈때처럼 또 한번 넘어지더니 마구 화를 내면서 울었다. 한번도 아니고 또 넘어졌다고, 어제도 넘어졌는데 왜 영어학원 갈때마다 넘어지냐는 것이다. 그건 그냥 우연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귀에 들리지도 않을 것 같어서 겨우 진정시켜서 집에 왔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왜 엄마가 자꾸 보고싶냐고 물었다. '엄마가 없어질 것 같아서...' '엄마가 왜 없어져? 엄마는 집에서 너 올때만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가 보고 싶다는 건 표면적인 얘기고 속내는 다른 데에 있는 것 같아서 짐작이 가는 이유를 물어봤다. '친구가 없어서 그래?' 끄덕끄덕. 자기 전에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너 친구가 같이 가면 잘 다닐 것 같아?' '응!' 역시 친구문제였다. 

 

샤워를 하면서 아까 넘어진 무릎을 내게 보여줬다. 너무 억울해 하면서 마구 화를 내던 모습이 스쳐갔다. 화가날 땐 길거리에서 그러지 말고 네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풀으라고 했다. 그 말이 꽤 마음에 든 것 같다. 눈이 부은 채로, 평소엔 시켜야 겨우 하던 토도영어 워크시트를 스스로 하더니 내게 가져온다. 지딴에는 엄청 화를 내고 수업시간에 울었던 게 마음에 걸려서 나름 착한 일(?)을 하려는 것 같았다. 태권도와 영어학원 선생님께는 이러저러해서 아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움에 눈물 바람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내 눈에는 다 활발하고 의젓한 7세들만 보이고 우리 아이가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데 이것도 부모로써 죄를 짓는 기분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 뿐이었다. 엄마는 예전 동네에서 처음 이사하고 나서 너를 낳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데 3년이 걸렸어. 너는 아이라서 그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야. 만나자 마자 친구가 되긴 힘들어. 10번 20번 쯤 만나야 돼. 더 만나야 될 수도 있어.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난 뒤, 괜히 이 동네로 이사 온 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왔다. 몇 년 동안 쌓아왔던 인연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곳으로 오기까지 참 많은 갈등과 번민이 있었는데 오자마자 이런 일을 마주치니 착잡했다. 내가 이어가고 싶은 인간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를 단절하고자 했던 게 가장 큰 이유였고, 둘째는 아이 학업문제였는데 둘째는 과연 내가 잘 판단한 건 지 모르겠다. 이제 겨우 한달이니 절대로 서둘러선 안된다. 조바심에 억지 인연을 이어가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아이는 곧 적응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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