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연말까지 열흘의 시간이 남아있으나 다음주부터 아이 방학인 관계로 오늘 정리하려한다. 2주동안의 어린이집 방학이 다가오기 전에 블로그 글을 몇 개라도 욜려야 한다는 괜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읽었던 책은 총 45권이고 이중 소설이 12권, 에세이 17권, 인문 5권, 육아 1권, 기타 10권이다. 사놓고 안 읽거나 읽다 만 책도 열권 남짓 있는데 대다수가 육아서이거나 e북이다. 육아서는 '이 책만 읽으면 육아문제가 술술 풀리고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절실한 심정으로 구매해놓고 막상 사고나면 그 얘기가 그 얘기 같고, 왠지 애도 갑자기 말을 잘 듣는다든지 해서 읽을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전자책은 인터넷서점에서 주는 적립금 및 쿠폰을 적용하면 종이책보다 훨씬 저렴하기도 하고 공간활용면에서도 좋지만 문제는 제대로 집중해서 읽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나마 소설은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독이 가능한데 에세이를 비롯한 그 밖의 책들은 나도 모르게 설렁설렁 대충 읽어서 내가 책을 읽은 건지 어쩐건지 아리송 할때가 많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은 책이라도 중고로 되파는게 불가능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내년에는 전자책으로 구매하는 것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종이책도 새로운 책보다는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으로 독서방향을 잡으려고 한다.
이렇게 나를 거쳐간 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두 권의 책이 있다. 바로 서유미 작가의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와 구병모 작가의 '단 하나의 문장'이다. 둘다 단편소설을 엮은 소설집이고, 올해 처음 접하는 작가의 책이었다. 구병모 작가는 이름만 들어봤다가 '아가미', '네 이웃의 식탁'에 이어 세번째로 책을 읽게 되었고, 서유미 작가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는데 신간이 나올때마다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문체나 주제가 너무 어둡고 읽고 나면 한동안 우울해져서 한국 소설을 멀리해왔는데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는 적당한 불행(?)선에서 그치는 이야기라서 마음이 편했다. 대부분 소시민들이 겪는 이야기인지라 내 이야기같은 동질감을 느꼈는데 마음을 울리는 문장도 많았다. 읽을 당시에는 할말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흐릿하다 ㅠㅠ. 하지만 책을 덮자마자 다시 읽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다는 기억만은 분명하다.
반면 '단 하나의 문장'은 상대적으로 강렬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는데 어제 막 다 읽은 책이라 아직 기억이 생생하다(요즘에는 10초 전에 생각한 것도 까먹기 때문에 이것도 용하다 할 수 있다). 처음 몇 편을 읽었을때는 '왜 단편소설들은 꼭 애 잃어버리는 소재를 놓지 못할까',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작가로서 좀 게으른 선택이 아닐까' 등등의 생각이 떠오르면서 책을 팔아버려야지 했는데 중반이후부터 그런 생각을 접었다(그렇다고 초반부의 소설들이 별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을 보는 통찰력과 상상력에 감탄을 했고, 이 작가가 글을 쓰는 일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뇌를 거쳐서 이야기를 써내리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작가의 말'을 빌어 작가가 주인공으로 나온 소설이 네편이나 실린 것은 '쓰기 자체에 대한 거듭된 고민의 흔적'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동안 소설 마지막에 있는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이해를 돕는게 아니라 더욱 미궁에 빠뜨리게 한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신샛별 평론가의 해설은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을 잘 정리해서 작가의 의도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이 짧은 독서감상문을 적는데도 머리속에 맴도는 말이 글로 안 옮겨져 애를 먹는데 가끔 '작가나 될까'하는 시건방진 생각을 했다는 것에 반성을 해본다. 내년에는 마음을 울리는 책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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