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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푸념

끄적끄적15

by 아님말지머 2018. 9. 21.

백만년만의 끄적끄적 시리즈.

 

1.

결국 모든 육아스트레스의 근원은 나와는 다른 인격체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내 머릿속에 그려놓은 이상적인 이미지-특히 나와는 다른 성격으로 자라주길 바라는 것이 사실은 엄청난 욕심이라는 걸 알지만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렸을땐 난 항상 단짝친구하고만 놀아서 그 친구와 틀어졌을때의 그 피곤함을 느끼지 않길 바랬는데 딸내미는 벌써 베프가 생기고 베프가 어린이집을 그만두자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기고 있다. 놀이터에서 놀때도 항상 노는 애들 한두명하고만 붙어다니고 나머지는 대면대면하고 있다. 네살짜리 애한테 뭘 더 바라냐고? 맞다. 이 '조급함'도 스트레스의 근원이다.

 

2.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에너지 소비에 관한 생각. 운동량을 늘려주려고 집안에 트램폴린을 들였다. 필 받으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계속 뛰길래 역시 아이들은 대단하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새 또 뜸하길래 운동을 유도하려고 같이 손붙잡고 뛰었다가 1분도 안되서 나가떨어졌다. 한번 뛰면 막 웃음이 나온다. 너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힘들어서. 또 하원후에 한시간 넘게 놀이터에서 놀다오는데 그리고나서도 에너지 소비가 다 안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강철 체력을 갖고 있나 싶은 딸내미가 유일하게 약한 모습을 보일때는 바로 길을 걸을 때다. 걷기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기 전에 "엄마 나 힘들어.."하고 징징거린다. 한두시간은 우습게 뛰어다니는 애가 유독 걸을 때는 금방 지친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애들은 지루한 걸 못 참아서 힘들게 느끼는 것 같다. 모든 걸 놀이삼는 애들이라 아무생각없이 터덜터덜 걷는 것이 젤 힘들고 지루한 것 같다(노는 도중에도 '나 심심해'라고 하는 아이니). 키즈카페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 국토횡단도 하겠더만, 알 수 없는 에너지의 세계다.

 

3.

잠시 육아에서 벗어난 이야기.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난 과민성 대장을 앓고 있다. 앓는 사람만 괴롭고 병명을 밝혀서 웃음거리만 안 되도 다행인 그 병. 나이가 드니 증세가 점점 더 심해져서 최근에 병원을 가서 약을 타왔다. 병원을 갈 때마다 늘상 듣는 이야기-매운 거 먹지마라, 차가운 거 먹지마라, 커피 마시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를 듣고 왔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차가운 맥주 한 잔, 혀끝이 아릴 정도로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삶을 살 바에는 그냥 죽는 게 나은 것 같다(그렇다, 난 극단적인 마인드의 소유자다.). 내 소원은 -아마 모든 과민성대장을 가진 이들의 소원일 듯-차가운 커피내지는 커피우유를 마시면서 고속버스를 타고 놀러가는 것이다. 아니, 그것도 필요없고 그냥 걱정없이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다. 그 평범한 일상도 누릴 수 없는 내 신세여. 나의 예민한 장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됐는데 남편도 그다지 장이 튼튼한 편이 되질 못하고, 딸내미도 대변을 보는데 1분도 안걸리는 걸 보면 성인이 되서 과민한 장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미리 사과를 해야하나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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